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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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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제이 - [WALKIN’ Vol.1] 피제이 - [WALKIN’ Vol.1] 오늘 나온 곡이 내일 사라지고, 앨범 단위 결과물보다는 싱글 단위의 결과물이 더 많이 나온다. 언제부턴가 음악은 향유한다거나 감상한다는 표현보다는 소비한다는 표현에 더 어울리는 물건처럼 바뀌었다. 문제의 원인을 무엇이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인 흐름이 과거와 다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피제이(Peejay)의 행보는 꽤 흥미롭다. 모두가 짧고 간결하며 자극적인 음악으로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상황에서 그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찬찬히 음미해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연거푸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WALKIN’ Vol.1]은 그러한 피제이의 방법론이 거둔 결실이다. 그는 특정 악기를 과장하지도, 의도적으로 화려한 분위기를 구축하려 애쓰..
제이티 - [Delivery Man] 제이티 - [Delivery Man] 제이티(JAYT)의 목소리는 까슬까슬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탓에 가끔은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정박에 떨어지는 비트와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사실 제이티의 랩 스타일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그루브를 지닌 비트와 잘 어울린다. 첫 정규 앨범 [Delivery Man]에서 제이티는 그런 자신의 장점을 십분 살리는 모습을 보인다. 소리헤다, 마일드비츠,(Mild Beats), 험버트(Humbt) 등이 프로듀싱한 비트는 다른 앨범보다도 더욱 소울풀하고 재지하며, 완성도 또한 훌륭하다. 제이티는 특유의 유려한 플로우로 그 위를 자연스럽게 누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제이티가 쓴 가사들이다. ‘Delivery Man’이라는 타이틀에서 유추할 수..
영제이 - [From Paju To Seoul] 영제이 - [From Paju To Seoul]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드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음악 외적인 패션, 특징적인 행동이 그 아티스트만의 이미지가 되기도 하지만, 음악을 통해 만든 정체성이 가장 훌륭하고 매력적인 법이다. 영제이(Young Jay)는 그간 솔직함, 당당함이라는 무기는 확보해냈지만, 아티스트 고유의 정체성은 그리 탄탄하게 형성하지 못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 [From Paju To Seoul]의 구성과 전략은 꽤 성공적이다. 고향 파주를 앨범의 전면에 끌고 와 그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파주라는 도시가 영제이를 대표하는 이미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제이는 파주를 끌고 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간 발표한 작품보다 더 깊은 내면..
코드쿤스트 - [Crumple] 코드쿤스트 - [Crumple] ‘인생은 하나의 소설이다.’ 소설에 기승전결이 있듯이 인생 또한 그만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생을 고작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한 갈래 정도로 표현하는 건 지어낸 이야기 그 이상의 고난과 역경을 선사하는 삶에 대한 결례일지도 모른다. 프로듀서 코드쿤스트(Code Kunst)는 지난 정규 앨범 [Novel]에서 참여 래퍼들의 생각을 끌어내 기승전결이 갖춰져 있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딱 1년이 지난 지금, 그가 새 앨범 [Crumple]을 들고 돌아왔다. 이번 앨범은 지난 앨범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야기의 결은 사뭇 다르다. [Novel]이 래퍼의 실제 삶 자체보다는 생각에 집중했다면, [Crumple]은 래퍼들의 생각이 아닌 ..
랩몬스터 - [RM] 랩몬스터 - [RM]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Rap Monster)는 데뷔 이후 꾸준히 자신만의 결과물을 발표하고 있다. 단발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 의욕적으로 내고 있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그의 곡은 청자들에게 그리 큰 감흥을 전달하지 못했다. 곡의 성격이 자기 실력을 입증하는 게 아닌,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리스너들에 대한 투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는 되려 랩몬스터를 ‘그저 실력을 입증받고 싶어하는 아이돌 래퍼’라는 틀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했다. 명백한 패착이었다. 그러나 이번 믹스테입 [RM]에서 랩몬스터는 전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전처럼 래퍼로서의 정체성만 내세우는 게 아닌, ‘랩몬스터’가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과 주제를 논하고 자신이 거둔 성취를 열거하며 리스너를 적극적으..
브래스코 - [Divin’ To Earth] 브래스코 - [Divin’ To Earth] 작품의 분위기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건 래퍼의 주제 의식, 그리고 일관된 톤이다. 두 요소가 호흡을 주고받을수록 이야기에는 더 큰 힘이 실린다. 브래스코(Brasco)의 EP [Divin’ To Earth]는 이 이야기의 좋은 예시가 되는 작품이다. 앨범에서 브래스코가 논하는 주제는 넓지 않다. 현실과 인간의 충돌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이라는 틀보다는 그 틀을 만들고 안에 갇혀버린 사람에 더욱 주목한다. 모두 욕심이 초래한 결과라는 것이다. 가사는 신념, 아픔, 열등감 등 내면과 밀접한 단어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어느 한 줄도 쉽게 흘려보내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하며, 고민의 정도도 깊다. 그리고 이 가사를 내뱉는 브래스코의 목소리에는 비판적인 태도와 자조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