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를 위한 나라는 없다
Rap game was the furthest from my mind
랩 게임에는 전혀 생각이 없었지만
Had a notebook full of rhymes
라임으로 가득한 공책이 있었어
And a pocket full of crack rock dimes
그리고 주머니에는 코카인 덩어리가 가득했어
Time on my side, lift .45 in my jeans
허리춤에 내 미래(선고), 청바지에서 45구경을 꺼내들지
Open fire if you seem to be blocking my dreams, yessir
내 꿈을 막는다 싶으면 사격을 시작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Welfare, food stamps
복지, 정부 식권
Section Eight, me and Ma lived in the trap
Section Eight, 나와 엄마는 약 파는 동네에 살았네
I said fuck school, it holdin' me back
난 말했어, 학교는 좆지랄이야, 방해만 돼
I wanna bankroll, chasin' after that
나는 거금을 원해, 그걸 좇을래
- T.I. (Feat. Pharrell) "Paperwork" 中
티아이의 새 앨범 [Paperwork]의 타이틀 곡 “Paperwork”의 일부분이다. 짧지만 티아이의 음악을 대표하는 키워드인 마약과 총이 모두 담겨있다. 모두 ‘거리의 삶’을 대변하는 단어들이다. 데뷔 초기부터 티아이는 ‘거리의 삶’을 나타내는 단어와 그 이미지를 통해 래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했다. 완성도 높은 앨범과 빼어난 랩 실력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 총기와 마약을 소지하는 바람에 감옥에 갔다 왔다는 점은 그가 꾸준히 내세운 ‘거리의 삶’에 진정성을 부여했다. 출소 이후에는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봉사 활동을 하는 등 성숙한 모습도 보였다. 처음부터 살펴보면 철없던 래퍼가 성공을 거둔 후 역경을 맞이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왕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는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가 완성된다. ‘남부 힙합의 왕’이라는 이미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티아이의 정체성에는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있다. 이제는 범죄와 거리가 있을 정도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총과 마약, 감옥이라는 키워드로 앨범을 풀어낸다는 점이다. 랩이니 그냥 들을 뿐 딱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총을 그렇게 쉽게 소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국의 문화라고 따지면 어렴풋이 연상되기는 하지만, 그 또한 어릴 때부터 할리우드 영화 등울 통해 총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입 받은 것에 가깝다. 티아이가 늘어놓은 이야기를 자연스레 여기다 못해 멋있다고까지 느끼는 건 아마도 여기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티아이의 음악과 가사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렇게 수년째 ‘남부 힙합의 왕’께서는 친히 흑인의 삶과 총, 마약, 범죄를 연결하며 같은 이미지를 반복 재생하고 있다.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더해지는 건 덤이다.
물론 개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문제 될 건 없다. 미국이라는 땅은 더욱 그렇다.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같은 키워드에서 엿볼 수 있듯이 미국의 신조는 자유, 평등주의, 개인주의, 포퓰리즘 및 자유방임주의라는 다섯 개의 개념에 바탕을 둔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는 미국의 주요한 가치로 남아있다. 따라서 티아이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거리의 삶에 대해 논하는 게 그 자체로 잘못된 건 아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무슨 상관인가. 한때 논란이 됐던 티아이의 불법 총기 소지도 마찬가지다. 비록 범법이긴 했지만, 소중한 가족과 본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기를 소지했다는 점을 듣고 보면 오히려 티아이의 절박한 심정이 와 닿기도 한다.
그러나 총기 소지와 이를 변호하는 티아이의 방식에는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2007년 법원이 총기 소지를 이유로 티아이에게 30년 형을 선고했을 당시, 티아이는 정규 앨범 [King]과 [T.I. vs. T.I.P.]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불과 1년 전 절친한 친구가 총격전 끝에 사망한 걸 보고 충격을 받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기관총 세 정이라는 숫자는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소말리아 같기도 하다. 하지만 티아이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총기 난사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헬기로 쫓아다니며 생방송 하는 나라다. 총기에 대해 관대해 보이지만, 남용할 경우 반드시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빈민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마약과 총을 무기 그 이상의 생존 도구로 여긴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총을 들이대지는 않는다. 그만한 위험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가사에 등장하는 흑인의 대부분은 여전히 빈민가 구석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채 손에 돈뭉치를 집어 들고 마약을 거래하기 일쑤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허리춤에는 반드시 자그마한 권총도 한 자루 끼워 넣는다. 듣다 보면 차별의 역사로 점철된 미국 내 흑인을 오늘날에도 불우한 이웃 정도로 규정해 버리는 게 아닐까 염려스럽다.
우려와는 달리 현재 미국 내 흑인의 삶은 꽤 안정적이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뉴욕 거리 패션 사진만 봐도 옷을 매끈하게 차려입고 멋을 뽐내는 흑인, 일명 흑형들이 가득하다. 통계로 봐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986년에 경제학자 스미스(James P. Smith)와 웰치(Finis R. Welch)는 2차대전 이래 흑인의 변화를 분석한 뒤, 흑인 중산층의 수가 흑인 빈곤층의 수를 앞섰다고 밝혔다. 하층 집단이 없는 건 아니지만,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평등이나 경제적 기회에 대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엄청난 도약을 이룬 셈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미국 내 흑인은 억압받지도 않고, 압제적인 사회 제도에 저항을 외칠 필요도 없다. 빈민가에 거주하는 모든 흑인이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총이 득실거리는 정글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 것이 아니다. 마약을 거래할 필요도 없다. 티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까지 무리 없이 공교육을 받았다. 보장받은 교육의 권리를 포기하고 거리의 한복판으로 나아간 것은 전적으로 티아이의 선택이었다. '큰돈을 만지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불법 총기 소지는 어떠한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총기를 소지했다고 하지만, 가족의 안전이라는 전제는 합당한 이유보다는 변명에 가깝다. 정말 가족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다면 총기 소지가 아닌 이주가 답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그 어떤 주도 흑인 개인의 이주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총기 소지는 티아이 개인의 선택이었다. 불법적이었다면 그 또한 티아이가 선택한 길이다. 교도소는 그 죗값에 불과하다. 그러나 티아이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사회적인 장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인 것처럼 묘사한다. 성공을 거둔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코드를 되풀이하며 앨범을 소모한다. 돈의 액수와 총의 스펙은 예나 지금이나 자랑거리이다. 교도소 출신이라는 이력 또한 하나의 무기로 소모된다. 이번 앨범 [Paperwork] 또한 이 맥락을 벗어나지 못한다. 음악을 넘어 사회적인 이미지를 고려하면 티아이의 주장은 더욱 의문스럽다. 가족과 함께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며 구축한 유명인사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티아이라는 래퍼가 지닌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다. 진정한 자기를 증명하는 서류(Paperwork)라는 의미에서 이번 앨범의 제목을 붙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티아이가 입증하려는 진짜 티아이는 누구인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남부 힙합의 왕'으로서 거리를 지키는 티아이가 진짜일까,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와 아이를 끔찍이 아끼는 유명인사 티아이가 진짜일까? 양립하는 두 가치 아래 앞서 말한 단어들은 티아이의 삶을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워진다. 그저 남들보다 그가 얼마나 더 거리의 삶에 적합한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에 그친다. 헌데 정작 티아이의 삶은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가 내뱉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오래전 곁을 떠난 것들이다. 그간 구축한 이미지를 위해서 억지로 단어를 가사에 끼워 넣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없는 실체를 앞에 두고 잽을 날리는 섀도우 복싱이 연상된다. 현재의 삶이 거리와 멀기 때문에 억지로 더 자기를 입증하려 노력하는 느낌이다. 티아이의 노래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티아이는 멋진 래퍼, 아니 그 이상의 멋진 남자이다. 본인이 설립한 레이블 그랜드 허슬(Grand Hustle) 소속 뮤지션이 신곡을 낼 때면 여지없이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할 정도로 끈끈한 의리를 자랑한다. 세계 복싱 챔피언인 플로이드 메이웨더(Floyd Mayweather)가 아내에게 치근대자 한걸음에 달려가 주먹을 휘두르는 대범함도 지녔다. 부당한 이유로 경찰에게 총을 맞아 흑인이 사망하면 누구보다 앞장서 경찰의 부조리함을 호소할 정도로 정의감이 투철하다. 이렇게 티아이는 성공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주변을 돌보고 챙기며, 그간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법을 안다. 공교롭게도 모두 음악 외적인 이야기다. 물론 티아이는 신보 [Paperwork] 작업 당시 퍼렐(Pharrell)과 함께 250곡 이상 작업하며 음악의 전체적인 방향을 고민할 만큼 여전히 열정적이다. 랩이 촌스럽지도 않다. 예나 지금이나 빼어난 남부 힙합을 선보이는 걸 보면 음악적 감각 또한 뒤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음악 자체의 매력은 급감했다.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과거에 불과한 단어에 얽매이기에 음악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힙합은 어느 장르보다도 가사를 통한 자기 입증을 중시하는 장르이다. 가사 대필이 논란이 되는 장르는 힙합이 유일하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태도를 중히 여긴다. 진심을 갖춘 음악에는 존중을 표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디스로 응수한다. 팬들도 그 기준을 고스란히 따른다. 티아이가 절치부심 끝에 발표했다는 신보의 판매량이 저조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간 구축한 이미지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면, 그 또한 티아이의 책임이다. 앞으로도 과거에만 머무른다면, 티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201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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