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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hum Viphurit - Lover Boy


Phum Viphurit - Lover Boy

게을렀던 하루다. 세시 반부터 다섯 시 반까지 재밌지만 지루하기도 한 번역일을 마친 후 노래를 찾아 해멨지만 마땅한 소득은 없었다. 쫄깃하게 귀를 쳐대는 랩을 듣고 싶었지만 요즘은 아무리 찾아도 잘 안 나온다. 기대했던 프라임은 1집에 비해 약간 모자란 느낌이었고, 켄드릭 라마의 블랙 팬서 OST는 정말 좋은 앨범이지만 좀 아껴듣고 싶다. 로직의 믹스테입은 좋지만 마냥 내 스타일이라고 하기엔 아쉽고, 앤더슨 팩의 신곡은 단 한 곡에 불과해 좀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NxWorries의 "Link Up" 같은 로우파이 톤의 얼터너티브 알앤비 / 싱랩 송을 듣고 싶은데, 이런 곡이 자주 나오는 건 아니다. 만족스럽지 않다.

날이 갈수록 느끼지만 나의 음악 취향에는 꽤 까다로운 구석이 있다. 지금 보다 조금 어렸을 때 내 생활 신조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는 다 좋아. 엄청 좋아하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야' 였던 걸 생각해보면 내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주눅 들어있던 어린 시절은 이런 내 성격을 깨닫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가리는 게 조금 있다. 나이가 들고 있는걸까?

이런 상념에 젖은 채 주말을 보내고 있었는데, 스피커에서 이름 모를 노래가 날아와 귀에 꽂혔다. 컴퓨터를 확인해보니 태국 출신 뮤지션 품 비푸릿(Phum Viphurit)의 곡 "Lover Boy"였다. 낯선 뮤지션의 낯선 음악이었던 탓에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의심스러워 몇 번을 연거푸 더 들었다. 그럴수록 노래의 빛과 가수의 음색은 더욱 선명해졌다. 촘촘히 쌓인 악기들과 그 위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멜로디. 그리고 탁한듯 하면서도 은은하게 울리는 보컬. 탄탄한 구성 덕분인지 들을 수록 곡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곡에도 단점은 있다. 뮤직비디오다. 부드러운 인디팝과 해변, 여성의 조합은 이제 클리셰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유튜브에 넘친다. 아티스트 본인 또는 주인공이 그 뒤를 쫓는 줄거리 역시 뻔하긴 마찬가지다. 약 4~5년 전에 발매됐던 박재범의 "좋아"가 딱 이런식이었다. 영상의 퀄리티 자체만 놓고 보면 "좋아"가 좀 더 괜찮은 편이다. 그래서 "Lover Boy"는 오히려 뮤비를 보며 들으면 오히려 곡의 장점이 같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여자 주인공을 좇는 플롯 자체를 빼버린 채 동남아 해변의 따뜻한 바이브만을 채우는 쪽으로 진행했으면 더 부드럽고 볼만한 영상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 경우에는 곡의 내용과 뮤비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생기긴 한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방법으로 곡의 내용을 풀 여지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뮤직비디오에 곡의 매력이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품 비푸릿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또 내 까다로운 성격이 나와버린 것 같다.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따라가 주는 게 어쩌면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보고 듣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내는게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듯 튀어 나온다. 이런 생각에서조차 또 내 까다로운 성격이 나와버린 것 같다. 내 성격은 까다로운 걸까, 아니면 까다로운 척을 해보려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또 꼬리를 물듯 따라나온다. 또 다시 내 까다로운 성격이 나와버린 것 같다. 아무튼 품 비푸릿은 꽤 괜찮은 음악가 같다. 태국의 제프 버넷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하지만, 제프 버넷이면 뭐 어떤가. 곡만 좋으면 됐지. 듣고 좋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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