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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부드하게 담긴 시골의 정서, 바라카몬


부드하게 담긴 시골의 정서, 바라카몬


바라카몬의 배경은 노멀하다. 도시에서 내려온 엘리트와 지방 사람의 만남. 게다가 그 지방사람들 대부분은 섬 사람 특유의 순박함을 지니고 있다. 이런 배경의 만화가 일본에서 낯선 편은 아니다. 게다가 20대의 청년과 초등학교에 겨우 취학한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극을 이끈다. 비슷한 내용을 지닌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제목을 특정하긴 어렵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얼핏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가 이 만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순박함으로 가득한 시골은 잠시 찾아 리프레시도 할 수 있을정도로 살만한 동네다?' 혹은 '시골 아이의 순박함에 대한 고찰?' 아니면 '시골에서의 삶으로 살피는 더불어 사는 삶'? 작품의 주제란 장르를 막론하고 보는 이의 상상 속에 끼워맞출 수만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존재 가능하다.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추고 만듦새만 나쁘지 않다면 주제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과 작가가 살아온 삶을 하나씩 천천히 돌려 맞춰보면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시골에서 어렸을 때부터 살았고, 현재도 같은 동네에서 거주하며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이 단편적인 문장 하나만 드렁도 애니메이션 속 일부 등장인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시골에서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지위도 있는 남자 주인공, 하루에 배가 한두 번 밖에 뜨지 않는 시골에 살지만 만화가의 꿈을 가지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도시의 출판사에 보낼 작품 제작을 시도해보는 여고생, 시골 어른들에게 사랑 받으며 허물 없이 성장하는 어린 아이까지. 이 세 캐릭터는 마치 작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 있었던 주요한 순간들을 꽤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낸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즉, 애니메이션의 굵직한 줄기를 담당하는 등장 인물들은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캐릭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이든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창작물의 다수는 창작자 개인의 경험에서 파생되기 마련이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작품의 주요 캐릭터와 이야기가 탄생할 경우 이야기는 보다 자연스러워지고 단단해지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바라카몬>이 그렇다. 작품 속 다수의 캐릭터를 작가는 본인의 경험을 빗대어 만들어냈고, 그 결과 캐릭터 간의 합이 자연스럽고 줄거리 상 흐름과도 잘 어우러진다. 일례로 주인공이 '서예'라는 조금 특수한 직종에 종사함에도 작중 별다른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가 서에와 어느 정도 특징을 공유하는 만화를 시골에서 그리던 인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시골 특유의 함께하는 정서, 벨도 누르지 않고 찾아오는 시골 사람들, 편한 복장으로 논과 밭 또는 바다를 향해 밖에서 뛰놀듯 일을 하거나 수영을 하는 모습 등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디테일이지만 이런 요소 덕분에 애니메이션은 조금씩 조금씩 자연스러운 작품으로 변모한다.




물론 이런 특징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익숙하고 따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 개인의 경험이 반영된 캐릭터가 모여주는 모습은 다채롭고 입체적이며, 시골 특유의 따스하면서도 투박한 면모가 잘 담겨있다. 다른 시골 배경 작품보다 이 작품이 유독 따스하고 유쾌하게 느껴지는 건 이런 특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제목 <바라카몬>은 '시끄러운 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의 시끄러움마저 애니 속에서는 푸근한 마을 소리마냥 정겹고 구수하게 들린다.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나 경험이 없다면 해내지 못했을 부분이다. 실제로 도시에서는 그리도 시끄럽게 들리는 아이의 울음 소리가 인구 부족에 시달리는 시골에서는 반갑고 정겨운 소리의 대접을 받는다. 꼬마 아이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어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편이다. 타고난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환경 덕분에 시골 아이들은 큰 부침이 없이 자라는 편이다. 이런 캐릭터의 설정은 작가의 실제적인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걸 경험할 순 없지만, 경험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게 설정 형성에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바라카몬>은 이를 꽤 훌륭하게 해낸 작품이다. 많은 이들의 바라카몬을 그 수많은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유독 훌륭한 작품으로 꼽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