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

해외에 나간다는 것,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는 것.


해외에 나간다는 것,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는 것. 


비행기 타는 꿈을 꿨다. 낯선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가는 꿈을. 설렘과 두려움의 공존이 줄 오묘한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비행기를 아예 못 타본 건 아니다. 제주도는 몇 번 다녀왔다. 한 시간 남짓하는 비행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어떤 기분일까. 공항 입국장에 가득한 외국어와 낯선 사람들을 하나씩 지나친다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고 또 상상할 수록 어떤 기분일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예 느껴본 적 없는 느낌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겁이 많은 성격이라 무턱대고 해외로 날아갈 용기도 없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꿈만 꿨다.


현실이 된 꿈을 본 적이 있다. 그런 현실은 늘 모양만 꿈과 비슷할 뿐 디테일도 결도 조금씩 달랐다 꿈이 현실이 될 때는 항상 슬며시 다가왔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눈으로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과거 내가 꿈꿨던 그림인지 모를 때도 있었다. 잡힐락말락 아른거리는 꿈은 내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교토로 출국 전날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 티켓과 여권, 캐리어가 내 손에 있었지만 왠지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코앞으로 다가온 여행은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수속을 밟던 순간에도 항공기에 몸을 싣는 순간에도 터널을 지나 게이트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도 현실이 된 꿈을 실감하지 못했다.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공항의 구조를 몰라서 무작정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터널을 지나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어떤 게이트 앞에서 문득 공항 직원과 마주쳤다. 그는 일본식 억양으로 영어를 말하며 한 손으로는 입국 수속 데스크를 가리켰다. 아주 친절한 표정이었다.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이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낯선 사람이라는 것. 나를 둘러싼 환경이 180도 이상 달라졌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왔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다. 현실이 된 꿈의 실체가 비로소 내 앞에 그 일부를 드러낸 셈이었다.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발을 디딘 땅은 지도에서만 보던 곳이고 마시고 있는 공기는 상상조차 못 해본 이국의 것이었고 눈 앞에 펼쳐진 모든 단어는 한국어가 아니라는 것. 이질적이고 반가웠다. 사실 난 새로운 전경이 주는 자극을 오래도록 기다린 터였다. 이질적이고 생경한 느낌의 연속을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한숨 한숨이,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자극이 되어 돌아왔다. 그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과 환희를 느꼈다.



자극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간사이 공항에서 다시 교토행 열차에 몸을 맡겼다. 이어진 4박 5일의 시간은 정말 꿈 보다 더 비현실적인 꿈 같은 시간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짧게나마 대화를 해보고, 영어를 짤막하게 던져보기도 하고, 밤마다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사먹어본 시간들. 아메리카노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주택가를 조용히 돌아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그리고 그 그 외 수많은 순간의 추억과 기억들. 그 온전한 부딪힘의 경험은 어떤 단어와 글로도 옮기기 어려울 거 같다. 5일간 내 마음은 감동과 기쁨과 희열로 그만큼 크게 부풀어있었다.


여행 중간 하루는 교토 근교에 위치한 온천에서 보냈다. 나는 온천 가까이서 자란 터라 어지간한 온천에는 미동도 잘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의 온천이라는 것 자체는 특이하게 다가왔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느끼지 못할 하루라고 생각했다. 딱 온천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그랬다. 온천을 휘감은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와 우리의 것과는 묘하게 다른 구조와 디에틸들. 어쩜 같은 온천이어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었다. 같은 문화도 이렇게 다르게 분화되어 있으니, 대체 어느 경험을 소홀히 여길 수 있을까. 


잠시 후, 방에 짐을 풀고 온천에 몸을 맡기러 갔다. 노천탕이었다. 온천 탕에 몸을 뉘이고 고개를 들었다. 한 눈에 다 담기 어려울만큼 탁 트인 전경이 보였다. 위로는 푸른 하늘이 끊없이 펼쳐져있었고, 그 앞에는 그 연원을 알 수 없을만큼 오래됐다는 거대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바다보다 넓어 보이는 호수와, 오랜만에 보는 맑고 깨끗한 하늘의 끝없는 향연. 동시에 귀로 흘러 들어오는 일본인들의 웃음 소리. 익숙해 보였던 사물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곳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뭣 하나 모르는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연고 하나 없는 곳에 떨어지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 그 정도로 이 감정을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언어로 구체화하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만큼 크고 넓은 감정이다. 이 감정과 느낌을 나는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엊그제 다녀온 것 같은데 교토에서 귀국한지 3주 어느덧 3주 가량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눈 앞에는 교토의 잘 정돈된 거리가, 깨끗한 상점이, 조용한 카페가 아른거린다. 너무 즐겁게 여행한 탓일까. 일상의 디테일을 교토의 디테일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우리나라와 그 나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그곳에서 그토록 생경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게 일본 여행에 관해 묻는다면 꼭 다녀오라며 적극 추천할 것이다. 장소를 묻는다면 교토를 이야기할 것이다. 언제 가는 게 좋을 거냐 거듭 묻는다면 어리면 어릴 수록 좋다고 답할 것이다. 여행을 통해 내가 보는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다. 그러니 난 다시 꿈을 꿔야겠다. 나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꿈을 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