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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루머의 루머의 루머’, 자살을 마주한 우리가 취해야 하는 자세




‘루머의 루머의 루머’, 자살을 마주한 우리가 취해야 하는 자세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에 빠졌다. 드라마가 던진 화두나 문제 의식에 깊게 빠져있다. 드라마의 주제는 청소년 사이 따돌림과 자살이다. 학교에 퍼진 악성 소문과 이에 기인한 왕따. 헤쳐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낙인에 찍힌 학생이 겪어야 하는 아픔. 학교라는 사회가 전부나 다름 없는 청소년에게 이 아픔은 어쩌면 그 무엇과도 비견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그 감정의 깊이는 헤아리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따돌림과 자살이라는 문제를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그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서이지 않을까. 


그런 이들에게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꽤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작품이다. 드라마는 청소년 왕따와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전학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해나 베이커는 왜 자살한 것일까.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닥쳤던 걸까. 해나 베이커는 죽음을 고민하게 된 순간부터 천천히 테이프 속에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남긴다. 어떤 사건의 어떤 일이, 어떤 이의 어떤 말과 눈빛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는지. 그래서 왜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누군가에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멸시를 받아본 적 있는가? 누군가에게 끊임 없는 조롱거리가 되어본 적 있는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시 받은 적 있는가? 학교 폭력과 따돌림의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같은 상황도 맥락이나 개인의 성격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향도 정도도 다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당사자가 풀어 놓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이러한 감정의 개인적인 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주 잠깐 만난 남자친구에 의해 해나 베이커는 걸레라는 오명을 쓴다. 교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다. 사람들은 그녀를 쉽게 보기 시작하더니 길 가다가 학우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친했던 친구들도 그녀를 멀리한다.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들은 꽤 예쁜 그녀의 얼굴과 몸을 탐할 뿐이다. 지칠대로 지친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강간까지 당하며 해나 베이커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다. 해나 베이커가 겪은 일은 대부분 '저게 가능한 일일까?' 싶을 정도로 꽤나 심각한 상황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오로지 시청자와 해나, 각 사건의 가해자 밖에 없다. 


사건의 연속은 곧 해나 베이커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클레이 젠슨과 진정한 사랑이 피어오르려는 순간 마음의 틈을 비집고 나와 혼란을 줄만큼 큰 트라우마로 말이다. 이런 해나 베이커와는 달리 가해자들은 어떤 피해도 받지 않는다. 심지어는 본인의 행동을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실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 폭력을 기억하는 건 피해자이지 가해자가 아니다. 학교 폭력과 따돌림의 형태는 대체로 감정적이기에 외상으로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렇게 마음 속에 쌓인 감정적인 피해는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다. 따돌림 받던 이가 자살하는 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사회 속에 존재해야만 하는 개인이 결과적으로는 부재하게 되는 것이다. 극중 해나 베이커가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던 순간이 드라마 통틀어 가장 고요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는 그녀의 사회적 고립을 암시한 연출이었던 게 아닐까.





만약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해나의 문제를 알아보고 돌봐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사소한 배려와 따듯한 관심은 분명 필요했다. 이 두 요소는 해나가 잠시라도 마음의 문을 열었던 사람들의 특징이기도하다. 


클레이 젠슨은 해나가 남긴 테이프를 통해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이 배려와 관심이었고, 따뜻한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해나 베이커를 위한 행동을 시작한다. 직접적으로 상처를 줬던 친구들을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고 때로는 윽박지른다. 다치기도 하고 얻어터지기도 하면서 해나 베이커의 죽음의 원인을 이해하고 가까워진다. 그래도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문제에 다다를 때마다 클레이 젠슨은  이렇게 되묻는다. “해나 베이커 같은 피해자가 다시 생기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어쩌면 이 질문은 드라마가 탄생한 근본적인 원인에 가깝다.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죽고자 하는 사람을 죽지 않게 할 노력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닐까?





한 사람의 자살은 그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주변 사람 최소 6명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해나 베이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현장을 발견한 부모는 오열했고, 토니와 클레이 젠슨은 가슴 아파했다. 가해 사실과 그 결과를 애써 외면하던 가해자들은 자살을 시도하거나 계속 불안해하는 등 인과응보마냥 각기 다른 모양의 피해 징후를 보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일어난 부정적인 결과가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금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해나의 자살이라는 사건은 고등학교와 주변의 일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낸다. 드라마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균열은 실제로도 쉽게 메워지기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깊은 곳에는 영원토록 채워지지 않을 균열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우리가 해야하는 건 무엇일까.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청소년 자살이라는 사건의 무게감을 깨달아야 하고, 그 원인과 과정을 알아내서 같은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물론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결과만 보고 부랴부랴 움직이는 것과, 피해자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고 공감한 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강력한 힘을 지닌 사회적인 작품이 될 수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살의 실체와 경중을 이토록 힘있고 진지하게 대하는 드라마는 흔히 보기 어렵다. 하지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누구도 직설적으로 말하기 싫어했던 일련의 사건과 끔찍한 결말을 뚜렷하고 일관성 있는 자세로 모두 조명한다. 심지어 면도날을 피부에 갖다 대는 순간은 시청자가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성과 해나의 시각을 시시때때로 보여주면서 그 감정을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전달한다. 자살을 택하는 피해자들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거나 한번 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인 셈이다. 이는 많은 드라마가 도전에 나섰지만 번번히 실패한 부분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인 해나 베이커와 선량한 동조자 클레이 젠슨에 감정 이입하고 있다. 또한 사건의 전후 관계에 집중하고 사안의 경중함을 이제야 깨닫는 이들도 많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해나 베이커 역을 연기한 캐서린 랭포드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전체 공개로 돌리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응원의 메세지를 전했다. 또한 제작진 측은 자살이라는 문제의 심각성, 작품 속 중요한 포인트를 출연자들이 직접 엮고 풀이한 특별 에피소드를 제작하기도 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자살이라는 소재를 다룬 드라마라고만 보는 건 어쩌면 작품을 반만 이해한 걸지도 모르겠다.


오는 2018년에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 2가 공개된다. 원작 소설은 시즌 1의 내용만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시즌 2는 원작과 결을 유지하면서 재판 이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봉합하고 나아지는 과정을 그릴 것이라고 한다. 시즌 1을 보며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공허함을 느낀 이들에게도, 좋은 치료제가 될 시즌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