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파워 - 방사능
- 그라임 묻은 방사능, 리듬 파워의 파괴력
그라임은 독특한 장르다. 2000년대 초반 동부 런던에서 태동했다. 그 시작은 힙합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유행하던 덥스텝, UK 가라지, 정글, 자메이칸 댄스홀에서 비롯된 장르다. 이 장르들의 독특한 리듬, 전자 음악의 요소가 영국 래퍼들의 강렬한 스피팅과 만나면서 그라임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라임은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만큼 그 어떤 장르보다도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그래서 보통 실력을 갖추지 않는 이상 장르 자체의 개성에 가수의 개성이 묻히기 일쑤다. 그래서 그라임을 시도하는 뮤지션에게 중요한 건 그라임의 힘과 자신의 힘을 융화하고 그 이상으로 뽐낼 수 있는 실력이다.
리듬파워는 과거의 아쉬운 성적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듯 앨범 [저수지의 개들]을 기점으로 음악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싱글 "산 타"에서는 전에 없던 강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들은 꽤 성공적이었다. 그간 노래했던 장르보다 더 그들에게 맞는 옷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이 새 싱글로 그라임을 택했다는 걸 알고 조금 놀랐다. 의외라는 생각과 함께 잘 선택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리듬파워는 새 싱글 "방사능"에서 텐션을 확 끌어올리며 그라임 비트에 꿇리지 않는 개성과 실력을 보여준다.
이번 싱글의 특징은 리듬파워의 선택과 집중이다. 그룹 내에서 보컬과 랩을 함께 소화하던 행주는 이번엔 찰진 발음으로 훅을 살리는 데 전념했다. 그의 빈자리는 보이비와 행주가 주고 받는 랩으로 가득 메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지구인과 보이비의 랩이다. 지구인은 하이톤의 찰진 발성을 기반으로 구석구석 위트있는 가사를 내뱉고, 그 반대에서 기존의 뚜렷한 스피팅을 기반으로 타이트한 비트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며 곡의 흐름을 주무른다. 가사에는 짧고 간결한 곡의 흐름에 맞게 기존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플로우와 라임을 손질한 흔적도 보인다. 장르에 대한 연구가 수반됐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그라임의 개성에 조금도 꿇리지 않는다. 나아가 장르의 특성 자체를 완전히 리듬파워의 카테고리 안으로 끌어온 듯한 느낌도 준다.
'아메바 컬처에서 유일하게 실패한 그룹' 모 힙합 커뮤니티의 유저들이 장난삼아 그들에게 던지는 농담이다. 음악적 여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실패라는 단어로 규정하는 건 오만한 짓이다. 지구인과 보이비의 <쇼미더머니> 출연과 행주의 정규 앨범 이후 그들은 꾸준히 음악적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리듬파워는 서서히 맞는 옷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늘 노력하는 그룹이었다. 그 노력이, 장르의 틀을 살짝 비틀은 순간 팀을 비집고 흘러나온 게 이번 싱글이 아닐까. 리듬파워가 앞으로 계속 그라임을 시도할 확률이 어느 정도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라임 같은 예외적인 장르마저 훌륭히 포용할 수 있을만큼 노련해졌다는 것. 그 결과물이 손으로 재단한 맞춤 양복처럼 그들의 목소리에 잘 어울렸다는 것.새 싱글이 낳은 최대의 수확이 아닐까.
(*싱글의 이름으로 "방사능" 이라는 팀의 과거 이름을 썼다는 걸 보면, 리듬파워도 곡이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DF LIVE] 리듬파워 - 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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