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Vince Staples - Prima Donna
Tracklist
01. Let It Shine
02. War Ready
03. Smile
04. Loco (Feat. Kilo Kish)
05. Prima Donna (Feat. A$AP Rocky)
06. Pimp Hand
07. Big Time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의 음악은 대체로 어둡다. 무엇을 이야기하든 주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대단히 무미건조하고 냉소적이다. 직설적인 단어로 사회 구조의 문제를 매섭게 파고들 때는 그만의 깊은 통찰력과 날카로운 직관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래퍼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의 언어는 유독 날 것의 맛이 더 강하다. 여기에 첫 정규 앨범 [Summertime ’06]을 통해 긴 호흡 조절로 훌륭한 작품을 구축하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힙합 씬의 루키를 넘어 단번에 떠오르는 블루칩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새 EP [Prima Donna]는 그동안 발표한 작품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도입부에서는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비트는 어두운 분위기에 강한 베이스로 무장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전작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특징을 공유한다. 그래서 얼핏 들으면 연장선이 아니라 같은 내용의 반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살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Prima Donna]는 그간 빈스 스테이플스가 쌓아 올린 래퍼로서의 캐릭터와 [Summertime ’06]의 구성이라는 뼈대 위에 탄탄히 구축한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 컨셉 음반이기 때문이다.
지난 앨범에 담긴 주제가 빈민가의 다양한 이슈와 미디어와의 관계였다면, 이번 EP의 주제는 조금 더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개인은 빈민가에서 이제 막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진출한 ‘래퍼’이다. 사회적 위상이 달라진 만큼, 래퍼를 둘러싼 상황도 묘하게 변한다. 더는 빈민가의 갱스터도 아니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주인이 되지도 못하는 음악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 더욱 악을 쓰기도 하고("Pimp Hand"), 음악계에서 래퍼로서 최고의 시기를 맞이하는 것처럼 굴기도 한다("Big Time"). 두 사회에서 치이며 정체성을 조금씩 잃은 래퍼는 마치 정신분열에 걸린 듯 번뇌하며("Loco"), 힘든 내게 웃어달라고 읊조리기도 한다("Smile").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처지는 말 그대로 공적인 생활부터 사생활까지, 삶의 모든 게 상품이 되는 프리마 돈나(Prima Donna)의 처지를 연상케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단 일곱 곡에 걸쳐 풀어내고, 의도와 반대되는 순서로 트랙들을 배치하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잃지 않게 꾸리는 빈스 스테이플스의 능력은 가히 발군이다.
음반 내부의 단단한 짜임새와 스토리는 음반 외부의 뮤직비디오로까지 이어진다. 빈스 스테이플스는 뮤직비디오 몇 개를 따로 공개하는 대신 하나의 뮤직비디오를 길게 편집, 다양한 상징을 통해 본 EP의 내용을 보다 뚜렷하게 그려낸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을 나와 기묘한 택시 기사에게 몸을 맡긴 빈스 스테이플스가 도착한 프리마 돈나 호텔(Prima Donna Hotel)에서 겪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그와 같은 래퍼들에게는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음반 속 탄탄한 스토리와 좋은 감독의 디렉팅이 조화를 이뤄 탄생한 뮤직비디오는 10분 안에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누구는 그 속에서 인큐버스(Incubus)와 서큐버스(Succubus)를 포착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구성된 음반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뮤직비디오의 가치는 훌륭하다.
개별 곡의 완성도 역시 주목할만하다. 노아이디(No I.D), DJ 다히(DJ Dahi) 등은 지난 앨범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비트를 프로듀싱했고, 새롭게 투입된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프로듀싱은 앞선 두 프로듀서와는 색다른 맛을 자랑한다. 여기에 비슷한 구조는 거의 없을 정도로 각 곡의 구성이 무척 다채롭다. 이를테면, “War Ready"에서는 안드레 3000(Andre 3000)의 목소리를 색다른 방식으로 샘플링해 곡의 리듬감을 배가시켰고, “Loco”에서는 킬로 키쉬(Kilo Kish)와 수차례 파트를 주고받으며 개인의 심리를 묘사해낸다. “Smile”에서는 랩 파트는 확 줄이고 훅과 브릿지의 비중을 늘린 뒤, ‘난 포기하고 싶다’라는 취지의 말을 1분 넘게 읊조리며 화자의 현 상태를 그려낸다. 곡의 분위기와 주제에 맞게 곡의 요소를 다양하게 배치한 것이다. 그 외에도 음반 곳곳에 특징적인 장치들이 숨어있다. 일부는 지난 앨범에서도 볼 수 있는 장치들이지만, 대부분 지난번보다 기술적이고 실험적인 편이다. 빈스 스테이플스는 이를 통해 개별 곡의 완성도는 물론, 앨범의 전반적인 흐름 또한 뚜렷하고 일관성 있게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여전히 그의 가사는 영민하고, 랩은 쫄깃하다. 그래서 듣는 맛이 있다. 그러나 그 기저에 놓인 분위기가 늘 어둡기만 하다는 것은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부분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자꾸 먹다 보면 질리는 것처럼, 한 가지 느낌밖에 나지 않는 음악은 장점만큼 꽤 뚜렷한 단점을 내포한다. 빈스 스테이플스의 음악이 그렇다. 또한, 역순의 트랙 배치는 호불호가 꽤 갈리는 기법이다. 좋게 말하면 예술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그의 음반이 평론가에게는 그 훌륭함을 인정받으면서도 대중에게는 타 래퍼만큼 회자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야기의 깊이를 생각해볼 때, 비교적 짧은 EP의 형태로만 풀어냈다는 점도다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함축된 연결 고리를 채워 넣고, 더욱 긴 호흡으로 꾸려냈다면 어땠을까.
빈스 스테이플스는 잠을 자다가 우연히 이번 음반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후 그 자리에서 작업을 조금씩 시작하고, 머릿속의 구상을 음악과 영상으로 옮겼다. 그렇다면 그는 아티스트, 예술가라는 이름에 대한 강박감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래퍼, 뮤지션,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래서 아티스트라면 가질 법한 스트레스, 압박감이 덜한 편이다. 성공의 정도도 가늠하지 않는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거친 단어와 말로 가득한 곡을 쓰면서도, 복잡다단한 하나의 앨범을 만들어내는 건 위의 말에서 드러나듯 무엇에도 연연하지 않는 그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조금씩 개척해가는 빈스 스테이플스. 그는 어제보다 오늘이 기대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밝을 아티스트이다. [Prima Donna]는 [Summetime ’06]에 이어 그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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